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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의 무서운 음모를 현실화시키는 "신복음주의" "이머징처치 운동" 신복음주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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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이성식 댓글 0건 조회 1,324회 작성일 12-03-06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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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의 무서운 음모를 현실화시키는 ‘신복음주의’, ‘이머징처치 운동’-신복음주의2
 
말씀에서 어긋나는 그들의 주장은 명백히 잘못된 것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17:11)




과연 보르그의 사고 방식 배후에는 무엇이 있을까? 예수에 대해서 설명한 한 뉴에이저의 주장을 들어보자.
“예수는 역사적 인물로서 사람이 그리스도가 되신 분이다. 그리스도, 곧 그리스토스는 존재의 영원한 초월적 인격의 상태를 말한다. 예수는 자신 안에 실현된 이러한 높은 의식의 상태가 언제나 그의 것만이 될 것으로 말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에게 그를 예배하라고 부른 적도 없다. 오히려 그는 우리에게 그를 따르라고 불렀으며 그를 본으로 삼아 그에게 배우고 그의 발걸음을 따르라고 불렀다.”




앞에서 언급한 포스디크 역시 이 뉴에이저의 의견에 동조한다. 그가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삶과 죽음은 너무나 고결하기 때문에 결코 오해되어서는 안된다”라고 말한 의미는 그리스도는 우리가 본 받아야 할 본일 뿐이지 우리의 죄악을 위한 흠없는 제물로서 우리의 찬양과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육체로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피로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의 생명을 사셨다.




성경은 말하기를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9:22)라고 하였고,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히9:26) 라고 한다. 사탄은 처절할 정도로 하나님처럼 예배와 찬양을 받기를 원한다. 그는 예수의 죽음이 의도하는 모든 것을 미워한다.





이머징 운동 검증 2 - 말씀 근본주의자들은 현대 사회의 적이다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자신을 드러내신 계시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성경은 우리의 최종 권위이다.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의 진리를 고수해야 한다.
2007년, ‘그들은 교회가 아니라 예수를 좋아한다(They Like Jesus But Not the Church)’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이것은 유스 스페셜리티의 리더인 댄 킴볼이 저술한 책이다. 이 책은 킴볼이 예수를 좋아하고 존경하지만 교회와는 전혀 상관이 없고 또한 성경을 문자적으로 취하는 그리스도인들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여러 젊은 청년들과 (한 사람은 레즈비언) 인터뷰한 내용들을 편집한 것이다.




킴볼은 여기서 독자들에게 한 친구의 농담을 올려 놓았다.
“(오직 성경, 오직 예수, 오직 믿음을 외치는 교회 및 성도들)그들을 모두 끄집어 내어 총살을 시켜야 한다.”
그리고 그는 우리는 “밖으로 나가 비기독교인들이, 특히 10대 후반에서 30대까지의 사람들이 교회와 기독교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말하는지 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댄 킴볼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차에 기독교 냄새가 나는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거나 “교제, 형제, 예배” 등의 기독교 용어들을 사용함으로 자신들을 기독교인으로서 드러내는 것은 ‘촌스러운 짓’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행동 양식이 구도자와 비신자들을 불쾌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킴볼의 신학에는 문제가 있다. 성경은 주 예수께 속한 자들은 이 세상에서 비정상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15:18-19).
예수님은 분명히 세상이 그리스도인들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게 될 것을 말씀하셨는데, 반대로 킴볼은 이러한 자세가 바뀌도록 우리가 노력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포스트-기독교(post-Christian) 문화 속에서 이방인이다. 이러한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였다면 지금이라도 이러한 사실을 알고 깨어나야 한다. … 과거와는 달리 현재 우리는 교회 밖에서 자라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다. 조언을 위해 찾아오는 일도 없다. 우리의 공동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리에 있지도 못하다. … 우리는 외부의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우리 자신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많은 이머징처치 지도자들은 킴볼의 이런 의견에 동감면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의 취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역사에서 말하듯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이방인이었다. 그들은 종종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고통을 당하였고, 기독교 역사를 통하여 셀 수 없이 많은 살인과 만행이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저질러졌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요8:23) 라고 하셨고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18:36)고 하셨다.




예수께서 하늘 아버지께 드린 기도를 들어보자: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요17:14).
이머징처치 운동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처럼 킴볼은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과거의 그 어떤 세대의 젊은이들과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이들에게 진리를 접하게 하려면 특별한 수단이 필요하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이 바른 것인가? 영혼을 꿰뚫고 진리를 드러내는 것은 특별한 수단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던가?
1960년과 70년대에도 혼동하는 젊은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삶의 의미를 찾아 헤메었다. 이들 히피족들은 오늘날의 젊은 세대와 모든 면에서 다르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의 분위기는 다를 지라도 여전히 죄와 의혹와 문제들은 같다. 수천명의 히피족들이 구원을 받기 시작했을 때 무엇이 그러한 역사를 일으켰던가? 그 당시의 목사들이 그들에게 인정 받기 위해 맨발이 되고 장발을 하였던가? 그렇지 않다.




그 당시 목사들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었다. 조금도 타협되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을 직선적으로 그러나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누어 주었다.
그 당시 목사들이 히피들을 더 이해하고자 마약을 하였던가? 그렇지 않다. 그들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었다. 그 당시 목사들이 히피들에게 “당신들은 죄인이요”라고 말하면서 미안해 하였는가? (킴볼은 오늘날 교회는 이렇게 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그렇지 않다. 그들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었다.




그렇게 많은 히피들을 빛의 하나님의 왕국으로 인도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그들은 말씀을 제시하였으며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주었다.
킴볼의 책에는 근본주의 그리스도인들에 관한 서술이 있다:
“그들은 동성애자들을 항상 반대하며 또한 세상에 대하여 언제나 부정적인 것들만 말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모든 성경을 문자적으로 취하고 있고, 그들 중에는 카드를 들고 다니는 공화당원들, 이스라엘 지지자들이 있다. 그들의 대화는 (사탄) 뱀을 다루는 방법, 불과 유황의 지옥에 대하여 말한다. 그들은 킹 제임스를 생각하고 서로 잘못을 비난하고 절대 금주를 장려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죄를 심판하기 위해 자연 재난을 사용하여 벌주신다고 믿는 복수심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다. 기독교 속어들을 사용하면서 교만하고 자신들 외에는 전혀 사랑을 모르는 자들이다.”




킴볼은 이러한 관점이 비기독교인들의 ‘보수적인’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인상이라는 것을 독자들에게 말한다. 또한 기술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하며 성경을 문자적으로 취하고, 마지막 때에 관한 성경 예언을 연구하고 지옥에 대하여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정죄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을 부정적이고 교만하고 사랑이 없고 복수심으로 가득찬 사람들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킴볼이 비신자들이 그리스도인들은 싫어하지만 예수를 좋아한다고 말할 때, 그들이 좋아한다는 그 예수는 누구인가? 그 예수는 성경의 예수인가? 아니면 세상이 원하는 예수인가?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는 너희들이 왜 나를 메시야라고 생각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있다. 나는 너희들의 생각을 존중한다”라고 대화하거나 그러한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진리에 관한 한 타협하지 않으셨다!
아마도 킴볼이 말하는 예수님이었다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앞에서 융화적인 제스처를 취하며 그들에게 지금까지 했던 종교 예식들을 계속하라고 격려했을 것이며,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향해서도 그들의 생계를 걱정하며 인자하게 타일렀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만일 그들이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하나님이요 그리스도인 것을 믿지 않는다면 그들은 그들의 죄 가운데 죽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바로 조금도 양보될 수 없는 진리이다.
“지내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이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요이1:9).





이머징 운동 검증3 - 기존 종교를 지키되 거기에 예수만 더하라
“추가로 말하고 싶은 것은 나는 기독교 신자를 만드는 것과 그리스도의 제자를 만드는 것이 반드시 같은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상황에 따라 예수의 추종자들이 불교에, 힌두교에, 유대교에 그대로 남아있도록 돕는 것도 장려할 만하다.” - 브라이언 맥클라렌




이머징 교회는 선교 개념도 바꾸고 있다. 예수를 위해 선교를 하되 당신 자신이 그리스도인이 되거나 또는 기독교 교회의 일원이 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머징 선교사들은 지역 사람들에게 그들의 종교를 유지하면서 예수를 따를 수 있다고 가르친다. 단지 그들의 종교 및 사상에 예수를 추가만 하면 된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용어를 알 필요도 없다.




2005년, 연합 국제 교류 신앙 기도 조찬회(United Nations Interfaith Prayer Breakfast)에 서로 다른 다양한 종교를 대표하는 100명의 대표자들 앞에서 이머징처치 운동 지지자인 릭 워렌은 다음과 같은 연설을 하였다:
“나는 이 아침에 종교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카톨릭, 개신교, 불교, 침례교, 이슬람, 몰몬, 유대교 신자이던지 아니면 심지어 전혀 종교가 없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의 종교적 배경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이 우주를 창조하실 때 우리에게 종교를 가지라고 창조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이후 워렌은 자신은 예수가 하나님이라고 믿고 있다고 말하였지만 그가 던진 함축적인 의미는 그들의 종교가 불교든, 몰몬이든, 다른 무엇이든 하나님께 중요하지 않으며 또한 그들의 종교가 예수를 그들의 삶에 받아들이는데 방해가 되지 않다는 것이다.




파수군의 나팔소리 (Watchman’s Trumpet) 잡지에서 발행한 2000년 5월/6월호는 이 새로운 선교 개념이 실제로 무엇인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사명을 가진 청년(Youth With a Mission) 기관을 포함한 여러 국제 선교 기관들은 기독교를 환영하지 않는 여러 선교지에 이 새로운 접근 방식을 실험해 보고 있다. 2000년 3월 24일, 캐리스마 뉴스 서비스(Charisma News Service)는 몇몇 선교사들이 지금 개종자들을 만들고 있으나 그 개종자들에게 “그들의 전통적인 종교적 믿음과 관습들을 얼마든지 붙들어도 된다”고 허락하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따라서 그들의 문화 속에서 다른 사람들을 불쾌하게 하는 일이 없다고 보고하였다.”




파수군의 나팔소리의 캐리스마 라는 기사는 다음과 같이 상세하게 보고한다:
“‘메시아닉 무슬림들(Messianic Muslims)’은 그리스도를 그들의 구세주로 영접한 후에도 계속 코란을 읽고 이슬람교 성원(모스크)을 방문하며 그들의 매일의 기도를 드린다. YWAM에 의하면 이는 여러 국가에서 실험해 본 선교 전략의 열매라고 한다.” 




캐리스마 기사는 새로운 개종자의 삶의 스타일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YWAM의 선교사 편지를 보고하고 있다:
“그들은 (새로운 개종자들) 이슬람의 필요들을 계속 따르는 삶을 살고 있다. 모스크를 방문하고 금식을 하며 코란을 읽는다. 또한 그들을 위한 하나님의 자비의 근원으로서 그리스도를 인정하는 모슬림 사람들과 함께 모여 친교를 나누기도 한다.”
가장 큰 선교 기관중에 하나인 YWAM이 개종자들을 향해 그들 자신의 종교적 전통을 그대로 수용하는 이머징 선교학을 지지한다는 것은 분별력이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대참사가 일어날 것을 전조하는 것이다.





교회 없는 기독교
헐버트 후퍼(Herbert Hoefer)는 ‘교회 없는 기독교(Churchless Christianity)’라는 책에서 교회없는 기독교관에 대해 피력하고 있다. 이런 후퍼의 연구에 대해 ‘교회밖에서 흥왕하는 인도의 그리스도 추종자들’이라는 글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1980년 중반에 놀라운 연구가 시작되었고 1991년 그 연구 결과가 출판되었는데, 연구를 진행했던 헐버트 후퍼는 마드라스 도시(Madras City)의 사람들이 서방 세계 기독교 나라 도시들의 그 어떤 대중들보다 역사적 기독교에 더욱 가깝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며 오히려 힌두교인들, 무슬림들이다. 그들 중에는 상당한 많은 사람들이 근본적인 성경의 교리들을 공개적으로 믿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인데, 그럼에도 그들은 제도적인 교회의 밖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내가 제안하는 이시타-데바타(Ishta-devata:Sanskrit, 자신이 원하는 것을 신성화함) 전략은 오히려 힌두교를 숨막히게 만드는 위험이 있다고 논쟁한다. 이는 고유의 기독교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화된 힌두교를 만들 것이라는 것이다. 아마 더욱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그리스도화된 힌두교라고 하겠다. 이때 나는 그들에게 실제로 이 둘은 같은 것이며 따라서 이에 대하여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제시하였다. 우리는 인도의 문화 및 종교성을 바꾸기를 원치 않는다. 우리는 단지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힌두교의 중심으로 가져가길 원할 뿐이다.”




이 기사는 굳이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인이 될 필요가 없으며, 자신의 종교적인 관습을 바꾸지 않고 단지 ‘예수’만 추가해도 상관이 없다고 부추긴다. 즉 힌두의 문화나 모슬림 문화를 ‘바꾸거나 거절하는’ 대신에 선교사들은 그 문화를 ‘그리스도화(Christ-izing)’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그는 인도에 소위 ‘세례를 받지 않은’ 수천명의 신자들이 있다고 말한다. 신자들이 세례를 받지 않는 이유는 여러가지인데, 그 중 가장 주된 이유는 경제적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손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세례를 받지 않은 이러한 신자들은 주위에서 그리스도인으로 불려지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한다. 세례를 받지 않음으로써 가족이나 친구들로부터 의심이나 모독을 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후퍼는 예로 한 사건을 설명한다:
“낮은 계급(caste)의 어떤 젊은이는 힌두교 축제 및 활동시에 드럼을 치며 먹고 산다. 그는 “이 모든 것이 내가 해야만 하는 것이지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의 믿음은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내 밖은 힌두교인이지만 내 안은 그리스도인입니다.””
후퍼는 그럴듯한 예를 들어 설득한다. 그러나 이 사람은 안팎이 모두 힌두교인일 뿐, 참된 크리스찬은 아니다.




후퍼는 또 다른 예를 들어 설명한다:
“그녀의 남편과 아들은 8년 동안 그리스도를 믿어왔다. 그 둘은 기독교 학교에서 공부했으며 그리스도를 배웠다. 남편의 아버지는 그리스도의 비전을 보았고, 형제 중 하나는 세례를 받지 않은 신자이다. 남편은 아내가 교회를 갈 때 교회에 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가끔 큰 공식 모임이 있을 때는 참여한다. 그들은 가족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의 가정에서 힌두 신들과 함께 예수를 섬긴다. 그들은 힌두 축제들을 지키고 있으며 축제 중에는 예수만 특별히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신에 대하여 생각한다.”




하지만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외에 모든 다른 것들은 배설물로 여기라고 말한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3:8)




새로운 선교학이 내포하는 바는 심각하다. 특히 이것이 매우 비성경적이란 점이 큰 문제이다.
렛 어스 리즌(Let Us Reason) 사역의 마이크 오펜하이머(Mike Oppenheimer)는 새로운 선교학에 관한 광범위한 연구와 분석을 했다. 그의 글 “21세기의 새로운 선교 방법”에서 오펜하이머는 다음과 같이 이머징 선교학을 비판했다:




“그리스도인이 자신을 무슬림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무슬림이라는 단어는 두 단어로 되어 있다. 이슬람(Islam)과 무(Mu)이다. 이 뜻은 알라신께 순복한다는 뜻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나 야훼에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알라신께 순복하는 자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가? 호칭을 바꾸던지 아니면 그 의미를 바꾸지 않고는 교리적으로, 실제적으로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 오직 혼동만 있을 뿐이다. 이방 종교를 버리지 않아도 된다는 가르침과 여전히 자신들을 힌두교 및 모슬림 사람이라고 부르도록 두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과 상반되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목표와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실용주의가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펜하이머는 그 책에서 이같이 질문을 한다. “힌두교도와 무슬림 교도와 예수를 따르는 자가 하나가 될 수 있을까?” 그는 “아니다”라고 말하며 이렇게 설명한다. “거짓 종교의 테두리 내에서 예수님과 관계를 맺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자신의 종교를 버려야 한다. 예수님을 추가만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 모든 것을 포용하려는 개념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좁은 길을 넓은 길로 만드는 것이다. 더욱 염려스러운 것은 이런 종류의 언급들이 우주적인 견해를 붙들고 있는 뉴에이저들에 의하여 표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앨리스 배일리(Alice Bailey)라는 뉴에이저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 나는 이 표현을 신조나 종교에 상관없이 그들의 동료들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사용한다”고 말했는데, 말씀에서 벗어난 이런 새로운 정의들은 많은 크리스찬들을 혼돈에 빠뜨리고, 진리의 복음을 왜곡되게 만들고 있다. 





순교자들의 피를 비웃는 이머징 선교학
새로운 이머징 선교학을 지지하는 몇몇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나는 다른 종교에서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 릭 워렌




“새로운 빛(New Light)을 구축한다는 것은 다른 종교의 믿음들과 “연결되는 것”이며 “정보를 나누는 것”을 뜻한다. … 야훼를 따르던, 칼리(Kali: 힌두교의 창조와 파괴의 여신)를 따르던, 크리슈나(인도 신화의 비쉬누의 제 8번째 신)를 따르던 이러한 거룩한 자들의 마음 속에 나부끼는 불꽃을 부인하지 않으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스런 제자가 될 수 있다.” - 레너드 스위트




“내게는 불교와 기독교 사이에 아무런 모순이 보이지 않는다. … 나는 가능한 좋은 불교도가 되어 보려고 애썼다.” - 토마스 멀톤
“알라는 또 다른 하나님이 아니다. … 우리는 같은 하나님을 예배한다. … 같은 하나님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무슬림이 예배하는 같은 하나님을 예배한다.” - 피터 크리프트




이와 같이 타 종교를 인정하는 이머징처치의 신앙관은 신복음주의자들에서 비롯되었다. 여기서 신복음주의자들의 신앙관을 잠시 엿볼 수 있는 글을 소개하고자 하는데,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이들의 인터뷰 내용과 글들을 통해 우리는 이들이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 수 있다.



(크리스찬트리뷴 2010년 6월 7일 기재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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