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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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이성식 댓글 0건 조회 534회 작성일 19-01-11 15:04본문
성만찬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유월절을 지킴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가 있다.
보통 ,만,자를 빼고 성찬이라고 불려지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성만찬에 대하여 지금 우리들이 일반적인 교회에서와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 어린양이 되시기 전에 제자들과 식사를 함께하신 것 처럼 초대 교회에서도 이렇게 정이 넘치고 따뜻하게 성만찬을 한 것을 볼 수가 있다.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2:42=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46~47=
이러한 성만찬이 초대교회가 세워지고 시간이 흐를수록 부자들은 너무나 많이 먹고 마시므로 취하고? 가난한 성도들은 허기에 배를 움켜지어야 했다.
사람 사는 곳에는 언제나 부작용이 따르게 마련인 것 처럼 성령 충만하게 받았다고 하는 초대 교회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성만찬은 어떻게 보면 형식에 사로잡히기 보다는 성도들의 교제라고 하는 것이 더 알맞은 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교회가 처음의 모습을 잃어버릴 수록 형식이 앞서게 되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교회가 직제가 되면서 아마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변하지 않았나 생각이 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처음,그 모습으로 성도들의 식사하는 모습이 아름다울 때 진정한 성만찬이 이룰수 있다고 생각이 든다.
아니 어떻게 보면 우리들이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성도들이 함께 웃고 즐기는 그 식사가 성만찬의 시간이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물론 아무런 생각없이 하는 식사가 아니라 주님의 죽으심을 생각하며, 다시 오실 주님을 생각하는 그 식사 자리 말이다.
이렇게 우리들이 잃어버린 소금의 맛을 회복하고,빛을 발하며, 세상 사람들로부터 정말 예수쟁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 비로서 성만찬의 회복이 아닐까?
우리들의 삶이 아닌 진리 되신 예수님 때문에 욕먹고, 따돌림을 받고 할 때가 성도들 개인의 회복이며,교회의 회복이 아닐까?
이것 없이 교회의 회복,개인의 회복을 논할 수가 있을까?
성만찬을 한다고 할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도 이 마지막 유월절을 지내신 후 기드론 시내를 건너 십자가를 앞두고 기도하려 가신 모습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매일의 삶에서 성도들의 건강한 모습으로 서로를 어루만지며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며 여유가 된다면 그렇지 못한 사람과 더불어 어우려져 식사 자리를 마련함이 진정한 성만찬을 나누는 거룩하고 구별되며 다르게 사는 성도의 모습이 아닐까?
이렇게 말하는 저 자신부터 무엇이 그렇게 바쁜지 어떤 때는 눈코뜰새가 없다고 할 정도이니........?
다니엘서에 보는 바와 같이 사람들이 빨리 왕래하며 다니엘 12:4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예레미야 5:1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
오늘날 물론 절대적인 빈곤에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은 그의 없다고 하여도 지금과 같이 상대적인 빈곤으로 사람들의 정서가 매마르고,외톨이가 되어지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때에? 교회가 아니 성도들이 이 성만찬의 기쁨을 함께 나눔이 진정한 예수님의 작은 제자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
오늘도 성만찬을 나누시고 기드론 시내를 건너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여..........
보통 ,만,자를 빼고 성찬이라고 불려지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성만찬에 대하여 지금 우리들이 일반적인 교회에서와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 어린양이 되시기 전에 제자들과 식사를 함께하신 것 처럼 초대 교회에서도 이렇게 정이 넘치고 따뜻하게 성만찬을 한 것을 볼 수가 있다.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2:42=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46~47=
이러한 성만찬이 초대교회가 세워지고 시간이 흐를수록 부자들은 너무나 많이 먹고 마시므로 취하고? 가난한 성도들은 허기에 배를 움켜지어야 했다.
사람 사는 곳에는 언제나 부작용이 따르게 마련인 것 처럼 성령 충만하게 받았다고 하는 초대 교회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성만찬은 어떻게 보면 형식에 사로잡히기 보다는 성도들의 교제라고 하는 것이 더 알맞은 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교회가 처음의 모습을 잃어버릴 수록 형식이 앞서게 되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교회가 직제가 되면서 아마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변하지 않았나 생각이 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처음,그 모습으로 성도들의 식사하는 모습이 아름다울 때 진정한 성만찬이 이룰수 있다고 생각이 든다.
아니 어떻게 보면 우리들이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성도들이 함께 웃고 즐기는 그 식사가 성만찬의 시간이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물론 아무런 생각없이 하는 식사가 아니라 주님의 죽으심을 생각하며, 다시 오실 주님을 생각하는 그 식사 자리 말이다.
이렇게 우리들이 잃어버린 소금의 맛을 회복하고,빛을 발하며, 세상 사람들로부터 정말 예수쟁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 비로서 성만찬의 회복이 아닐까?
우리들의 삶이 아닌 진리 되신 예수님 때문에 욕먹고, 따돌림을 받고 할 때가 성도들 개인의 회복이며,교회의 회복이 아닐까?
이것 없이 교회의 회복,개인의 회복을 논할 수가 있을까?
성만찬을 한다고 할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도 이 마지막 유월절을 지내신 후 기드론 시내를 건너 십자가를 앞두고 기도하려 가신 모습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매일의 삶에서 성도들의 건강한 모습으로 서로를 어루만지며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며 여유가 된다면 그렇지 못한 사람과 더불어 어우려져 식사 자리를 마련함이 진정한 성만찬을 나누는 거룩하고 구별되며 다르게 사는 성도의 모습이 아닐까?
이렇게 말하는 저 자신부터 무엇이 그렇게 바쁜지 어떤 때는 눈코뜰새가 없다고 할 정도이니........?
다니엘서에 보는 바와 같이 사람들이 빨리 왕래하며 다니엘 12:4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예레미야 5:1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
오늘날 물론 절대적인 빈곤에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은 그의 없다고 하여도 지금과 같이 상대적인 빈곤으로 사람들의 정서가 매마르고,외톨이가 되어지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때에? 교회가 아니 성도들이 이 성만찬의 기쁨을 함께 나눔이 진정한 예수님의 작은 제자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
오늘도 성만찬을 나누시고 기드론 시내를 건너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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