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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단기선교 간증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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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석포교회 댓글 0건 조회 3,795회 작성일 10-09-15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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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단기선교(캄보디아)간증문 (김영석)

작년에도 단기선교를 한번 가보고 싶었지만 전도부를 맡고있어 가지 못하고 올해도 생각으로만 단기선교 한번 가보고 싶다라고 마음 먹었을뿐 구체적인 준비는 없었다.  가지못하는 형편이기에 불만스럽게 캄보디아가 어떤나라인지 사역할곳은 어떤지역이고 가서 어떤 사역을 하는지 보여주시든지 해야 가든지 말든지 할것아닙니까 하자마자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께서 보란듯이 그 주일 김재익목사님께서 캄보디아와 사역할 따께오주와 쁘로헥교회동영상을 보여주실 때 아이고 빼도 박도 못하게 딱 걸렸다 생각이고 겁 덜컥나고말았다. 보란듯이 구체적으로 보여주셨는데 안갈수도 없고 갈 형편은 안되고 그때부터 기도했다. 내가 간다고 결심해도 가정경제를 책임지고있는 최정화 집사가 반대하면 또 갈 수없는 형편이었다. 혼자도 아니고 민성이와 가므로 더더욱 그랬다. 하나님께서는 최정화집사 를 잘못듣게 하셔서 불화없이 안보내면 안되도록 하셔서 단기선교를 보내시는 분이셨다. 작년 성과급이 6월에 나오는데 기본금의 100%이므로 생활비로도 빠듯했는데 얼마가 나올지 확정이 안되어 100%나올지 300%나올지 모르겠다. 이왕이면 300%나오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다른 소리는 안들리고 최정화집사 귀에는 300%나온다고 들려서 자신있게 민성이하고 보내줄테니까 가라고 말하길래 도대체 뭘 믿고 쉽게 가라고하지 생각하면서 나도 모르는 믿는 구석이 있나보다 하고 지나갔다. 어느날 뭘믿고 둘이 보내준다는겁니까 물으니 보너스 300%나오잖아요 하는 것이었다.
 “아뿔싸 100%나오는데 그것도 생활이 어려운 형편인데 인자 이일을 우짜노 나도 딱 걸렸고 최집사도 보내준다고 큰소리쳐서 딱 걸렸고 당신 귀에 그렇게 들린 것도 우연이 아니고 말 떨어지자마자 동영상보여주신 것도 우연이 아닌기라 마 하나님 뜻이 있는갑다 같이 기도하다보면 방법 안있겠나 무리를 안해갖고 언제 아들하고 단기선교한번 가보겠노 잘못 듣게하신 거도 마 하나님 뜻아이모 우째 이런 일이 생기겠노 갈 날은 다가오고 간다고 신청은 해놨고 재정은 깜깜하고 기적은 안 일어나고 아이고 하나님 가라는 깁니까 말라는 깁니까” 하고 있는데 적어도 재정준비는 일주일정도 시간을 주고 준비하라고 할줄 알았는데 6월69일 오전에 문자가와서 당일 입금하라는것이 아니가 항공원 발권 때문에 우리부부는 발등에 불이떨어져 이일을 우짜노 갑자기 180만원돈을 어디서구하노 그러나 쉬우면 누구나 안가겠나 심어야 거둘게있는것 아이가 하고 침착하게 현금써비스가 얼마가되는지 당장 현금이 되는게 무엇인지 생각해서 있는 금반지 목걸이 팔아서 90만원 현금서비스 70만원 올해 10월달이 결혼 20주년이라 최정화 집사 몰래 모으로있는 20만원해서 180만원 입금시키고나니 하루시간이 어떻게 갔는줄 몰랐고 한편으로는 이제 가게되었구나 하는 안도감과 갔다와서 어떻게 감당할꼬 걱정이 되었지만 죽있던 나를 살리셨고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은 죽으신 하나님이 아니고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므로 모든 염려 주께 맡기게되었다.  어린아이의 물고기 2마리와 보리떡 5개의 헌신으로 오천명을 먹이시고 열두광주리가 남지않았던가. 그동안 선교사님과 선교를 위해 많은 기도를 해 왔지만 조금 막연했고 짧은 단기선교를 통해서나마 선교 현장에서 몸으로 느끼고 싶었다.  그래야 선교에 대한 바른 이해와 선교에 대한 구체적인 기도를 할수 있지않겠는가 싶었다. 갈수 있는 마음을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고 내가 가서 큰일은 할 수 없지만 보낼 때에는 나의 작은 역할이 있을거라고 생각하면서 철저하게 순종하기로 결심했고 예수님의 섬김을 묵상하며 팀에서 철저하게 섬길 것을 다짐하며 감초역할을 해야할 것 같았다. 캄보디아팀은 10대에서 60대까지 골고루 연령이 분포되어 40대인 내가 죽고 섬겨야 위아래 소통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되기를 기도하며 노력했다. 이번 선교를 통해 아들 민성이와도 그동안 다른교회를 섬기다보니 같이 보고 대화할 시간이 없었고 전도부장 3년을 하는 동안 주일밖에 시간이 없었는데 주일마다 거의 10시, 11시에 집에 오니 더더욱 아들한테 미안했었다. 민성이에게도 선교에 대한 안목을 미리 눈 뜨게하고 싶었고 같이 단기선교여행을 하면서 많은 대화가 없을지라도 함께 하는 것만으로 아버지의 마음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학 들어가고 군대 가면 더더욱 같이할 시간이 없어 무리를 해서라도 가게 되었고 후회가 없으면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간을 빌어 갈수 없는 형편이지만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마음 고생한 그렇지만 부담을 안주며 흔쾌히 보내준 사랑하는 최정화 집사님께 감사를 드린다. 최집사와 함께 못한게 못내 아쉽지만... 현지에 도착했을때 가슴이 턱 막히는 날씨였지만 환한 미소와 시원한 목소리로 맞아주신 유남숙 선교사님은 꼭 한국에서 알고 지낸 분처럼 편안하게 맞이해주셨다. 혼자 몸으로 7년동안 세 교회나 개척하셔서 주일학생만 500~600명이 되면 현지 어른 성도들도 70~80명 고등학생과 대학생을 전도하여 제자삼아 리더로 키워 협력하게 하여 활발하게 사역하고 계신 현장을 보니 가슴이 벅차올랐고 위대하신 하나님의 일하심과 캄보디아땅과 그 땅의 영혼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보았으며 유남숙 선교사님의 캄보디아 사랑과 열정을 보며 많은 도전을 받게되었다. 또 구원파, 통일교 이단들이 막대한 자본을 무기로 대학가에 침투되어 왜곡된 복음을 전하며 세력이 커지고 있음에 경각심을 느껴야하며 보다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선교지원이 시급함에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리고 선교에 대한 바른이해와 많은 기도의 무릎으로 영적 물질적 인적 보급이 그 어느때보다 필요함을 깨달았다. 우리가 간 것은 단기선교가 아니라 비젼트립이고 적어도 3개월 6개월 1년정도 선교해야 단기선교라 말할수 있으며 지금도 6개월 1년 단기 협력선교사가 절실히 필요하고 와주시면 고맙다하시며 선교현장에 필요한 손길 재정사역(태권도 그림 음악..)이 너무많아 혼자 벅찰 때가 많다고 고백하실 때 구체적이고 준비된 협력 선교사 파송이 절실함을 보았다. 짧은시간 좋은 팀웍, 가족같은 친밀함으로 부족했지만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하고 온 캄보디아팀을 사랑하며 축복합니다.  캄보디아에서의 사역을 떠나 이곳에 18명이 온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기적이라는 김재익 목사님 말씀에 준비기간동안의 마음고생내지는 말 못할 많은 어려움을 읽을 수 있었고 갈 팀원들이 새벽기도에 몇 분밖에 안보이고 마지막까지 팀구성이 결정이 안돼 많이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는 금민아 사모님의 고백에서 마음이 아팠지만 그런 어려움과 고통이 있었기에 그곳에서의 사역이 은혜로 이루어지고 건강하게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게 됨을 목사님과 사모님께 다시한번 감사드리며 축복합니다. 온유함과 부드러운 리더쉽과 주방장으로 섬겨주신 이형준 팀장님께도 감사드립니다. 4명의 아이들 불평불만없이 너무나 밝게 건강하게 사역에 동참해준것도 감사, 두 청년 말없이 힘 많이쓰고 섬겨주심 감사, 아픈 팔에도 팀에 누가될까 밝은 표정으로 적극적으로 사역하시고 밤에 아파서 우신 연수집사님께도, 가장 연장자이신 장로님 권사님께서 몸으로 율동으로 앞장서 본이되어 주신 것 감사, 단기선교직전 지방발령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여 동참해주신 김경용 김나현집사님께도 감사, 찬양율동 사역 더운날씨 언어소통의 어려움에도 열정적으로 사역하신 영선샘과 이미영집사님 팀의 재정의 거의 완벽하게 그러나 풍성하게 맡아주신 해영샘에게도 모두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채문식 담임목사님의 선교에 대한 열정과 당회와 선교부의 적극적인 도움과 지원으로 잘 다녀오게 됨을 감사드리며 비젼트립은 계속 진행되면서 적어도 6개월 1년 협력 단기선교를 발굴 지원 파송하여 석포교회 자립 선교사 파송이 수 년내에 이루어질 줄 믿으며 기도해주신 성도님들과 모든분께 감사드리며 모든 영광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 캄보디아를 다녀온후 (김나현)

성장반과정중 목사님으로부터 캄보디아 단기선교에 동참하자는 제의를 받고 가족들도 있는데 혼자 간다고 마음 먹는게 여간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중 순종하라는 말씀과 가족이 함께 가는 길을 모색해보기로 목사님과 함께 기도했습니다.  가족이 함께 가기엔 남편의 결심과 아이들의 적극적인 동참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마음먹기가 힘들었지 가기로 마음 먹은 후 그에 대한 현실의 손해와 나간은 극복해보자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나를 걱정하게 하는 것은 아이들의 건강이었습니다. 그곳은 더운 나라에 말라리아가 유행하고 있어서 면역력이 어른보다 약한 아이들의 건강과 더위에 지쳐 선교 일정대로 잘 움직여 줄 수 있을지가 걱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염려 가운데서도 이번 선교여행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확신과 나의 염려와 막연한 두려움은 하나님께 맡기리란 생각으로 편안하게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출발 첫날 비행기로 이동하면서 아이들은 또래 친구들과 친해져 순조로운 동행을 예감할 수 있었고 그곳에서 함께하는 내내 오히려 아이들로 인해 더 즐거운 여행이 될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도착하여 저녁 늦게 캄보디아 땅을 밟게 되었을 때 너무 낯설고 그 말 할수 없는 어두운 느낌과 동질감이라곤 전혀 느낄수 없는 나에겐 낯설고 먼 곳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루 밤은 지나 첫날 아침 일찍 첫 사역지인 쁘로핵교회로 향할 때까지도 마음은 무겁고 열려있지 않은 채 낯선 캄보디아 풍경을 차 창밖으로 바라보다 어느새 쁘로핵교회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차안에서 내리면서 교회 마당에 300여명 빼곡이 앉아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울컥 나오려했습니다. 나의 뜻하고는 달리 내 안에서 뜨거운 마음이 생겨나고 저들의 모습은 너무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행색이었지만 그들은 우리를 원했고 우린 그들의 필요를 조금이나마 채워줄 수 있다는게 제 마음을 열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 곳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캄보디아 아이들의 눈망울이 나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가치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 복음을 전하는 것임을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그들과 동화되어 하루가 지나고 뜨람끄나 교회로 옮겨 2박을 하게 되었는데 교회에서의 잠은 쉽지 않은 일정이었습니다. 방충망이 없어 들어오는 온갖 벌레와 도마뱀, 열악한 샤워시설, 땔감으로 저녁을 지어먹는 것...  한국에서의 편안한 생활에 익숙한 나에겐 너무 불편한 것들이었지만 우리 일행 어느 한명도 심지어 아이들까지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우리는 성령 안에서 그들과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아가씨 혼자 몸으로 캄보디아에 들어와 천막치고 마당에서 시작한 교회가 지금은 300여명이 모이는 교회 3곳이 생겨났고 혼자서 3군데를 인도해나가는 유남숙선교사님의 모습은 나에게 존경과 동경을 넘어 충격이었습니다. 어떤 말로 어떤 표현으로 그분의 모습을 담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았다면 결코 이룰 수 없는 일을 그분을 통해 보았고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다면 파송한 교회의 전폭적인 지원과 기도, 선교사님에 대한 믿음이 더해진 것입니다. 이런 모습에서 석포교회에 대한 도전과 비젼도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 그곳은 3군데 교회를 함께 인도해갈 동역자가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마지막까지 모든 일정을 마치고 공항에서 배웅하는 선교사님 마침내 울고 말았습니다. 너무 죄송하고 미안했습니다. 선교는 우리 모두가 해야 하는데 혼자 두고 오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했습니다. 비행기에 오르고 마침내 도착하여 한국 땅을 밟는데 내 마음이 아직도 캄보디아에 있음을 그리고 유남숙선교사님이 아이들과 함께하며 짓는 그 함박웃음이 눈에 가득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난 이들을 통해 캄보디아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I love combodia! 
그리고 이 모든 일정을 함께 한 목사님, 우리일행 18명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 캄보디아 단기선교를 다녀와서 (김경용)

평소 해외선교라는 것이 나와는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살아온 나에게 이번 캄보디아 선교는 우연하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직업의 특성상 가족끼리의 3일 이상 국내여행을 계획하기도 쉽지 않아 최근 10년간 가족여행도 다녀온 기억이 흐릿한 나에게 해외로 그것도 장장 8일간이라는 일정은 불가능한 것으로 어겨졌다. 그래서인지 울산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 부산에서 걸려온 집사람의 단기선교가자는 전화는 재고의 여지없이 안 된다고 잘라 말하는 나의 대답만을 예고했다. 그런데 왠지 마음 속에서 이번 기회에 한번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일정도 될 수 있겠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상사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장기간의 휴가를 요청했더니 흔쾌히 승낙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7월초에 삼천포로 인사발령이 나면서 직접 한 지역만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게되었다. 이전에는 동료직원이 내 업무를 대신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지만 이번에는 나 혼자 책임지는 지역이다보니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새로운 상사에게 이미 예정된 장기간의 휴가일정을 보고를 하니 흔쾌히 승낙을 해주었다. 주변여건이 좋지 않았지만 상황은 순조롭게 진행되었지만 갑자기 내 마음속에서 조바심이 생겨나 하지도 않을 근심과 걱정이 뻗쳐서 중간에 목사님에게 못 가겠다라고 번복을 하였다. 목사님은 며칠 남지 않은 일정에 당황하셨겠지만 침착하게 기도해보라고 하셨다. 이내 마음을 추슬러 사소한 회사에 대한 걱정을 뒤로 한채 무사히 캄보디아행 비행기를 탈수 있었다. 처음내린 캄보디아 프놈펜공항의 후덥지근한 바람과 흡사 70년대 농촌 아니 북한을 연상케하는 침침한 시내를 보며 이제 시작도 하지 않은 일정이 까마득하였고 다음날 아침 탄 미니버스가 포장도로를 지나 비포장도로를 지날 때는 이제부터 고생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이 가득찼지만 쁘로핵교회에 도착하여 처음 본 아이들의 눈망울을 보면서 이제까지 내가 너무 교만한 생각을 하였구나 하는 후회의 마음을 발견하였다. 짧고도 아쉬운 3일간의 사역일정기간동안에 불편한 환경보다는 좀더 준비하지 못하고 온 나자신에 대한 반성과 후회가 더욱 절실하였다. 이번 선교일정을 통해 나약한 나 자신을 하나님 앞에 무릎꿇고 순종하며 이제껏 살아온 이기적인 삶을 바꾸어 주위의 어려운 이들을 도우며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마음 속에 품고 돌아오게 되어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 캄보디아를 다녀와서(김민준)

캄보디아를 가는 날 새벽에 교회에 모여서 갈 때 잠이 와서 진짜로 가는지 몰랐다.  그런데 공항에 도착하자 진짜로 내가 캄보디아는 간다는 기분이 들었다. 비행기 안에서는 캄보디아는 어떤 나라이고 선교사님은 어떨지 궁금했다. 캄보디아에 도착하자 공항에서 뭘 적고 확인하고 할 때 해외 가는게 뭐 이렇게 복잡하게 하는지 몰랐다.  그리고 다음날 쁘로핵교회에 갔을 때 애들이 2~300명 모인 것을 보고 어디서 이렇게 많이 모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뜨람끄나 교회에도 애들이 많이 모여 있어서 신기했다. 그리고 교회에서 잤을 때 첫째 날은 좀 괜찮았는데 둘째 날은 화장실 안에 벌레가 진짜 많이 있어서 이게 캄보디아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날 뚱슬랭 박물관에 갔을 때 폴폿이라는 사람을 보고 참 어이가 없었다. 왜 반공산주의자들을 고문하고 살해하고 학자들을 잡아 가둔건 지 이해가 안갔다. 그리고 앙코르왓트를 갔을 때 그 시대에 어떻게 지었을지 신기하고 궁금했다. 그리고 아무리 그때 왕을 존경해야 된다고 해도 계단을 그렇게 가파르게한 것은 너무한 거라고 본다. 마지막으로 집으로 올 때는 7박 8일이 아닌 2박 3일처럼 짧고 아쉽게 느껴졌다.


*** 캄보디아에 다녀온 후(김예은)

저는 캄보디아에 다녀온 후 정말로 우리는 잘살고 있구나하고 느꼈습니다. 캄보디아 아이들은 밥도 제대로 먹지못하고 겨우 사탕 1개 2개 받으려고 교회에 오고 또 신발이 없는 애들은 맨발로 딱딱하고 위험한 잔디밭에서 축구를 하고, 정말로 우린 잘 먹고 잘산다고 느꼈습니다. 또 저는 캄보디아를 다녀온 후에 많은 반성을 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잘살면서도 먹기 싫은 음식도 짜증을 부리며 먹기 싫다고하고 옷도 별로 이쁜 것도 없다고 투정을 부리고 그리고 매일 행복하게 살면서도 그렇게 했던 제가 캄보디아 아이들을 보고 제 자신이 부끄러웠고 제 생활을 많이 반성해야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뭔가 아쉬운 점이있다면 캄보디아 그 땅에 가서 제대로 3일 동안에 열심히 못하고 복음을 잘 못 전해준게 많이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래서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그땐 정말 열심히 선교를 하고 싶습니다.


*** 캄보디아 단기선교 간증문(김영선)

우리교회에서 1차, 2차 단기선교팀이 세워지고 갈 때마다 나도 이들 중에 한 명이되어 함께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의 상황과 여건 때문에 이런 마음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3차 단기선교팀 모집... 1년전, 2년전 내려놓았던 마음이 다시 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김재익목사님께서 캄보디아 현지에서 사역하고 계시는 유남숙선교사님의 열심을 보여주셨다. 이 날 머릿속에 담긴 영상이 떠나지 않고 계속 나를 따라다녔다.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나는 환경도 처지도 하나님께 다 맡기고 캄보디아 단기선교를 가기로 결심했다. 그 후 모든 일을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께서 직장문제도 재정문제도 다 해결해 주셨고 난 감사한 마음으로 캄보디아땅으로 향할 수 있었다. 프놈펜에 도착해서 첫 사역지인 쁘로핵교회에 도착했다. 언제 빨아서 입었는지도 모르는 옷, 엉겨붙은 머리카락, 씻지 않은 몸에서 나는 냄새, 양말도 신발도 신지 않은 발을 한 250명 가량의 아이들이 교회마당에 빽빽이 줄지어 앉아있었다. 이렇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고 예배하고자 모인 아이들의 눈망울이 너무 맑고 예뻤으며 이 아이들을 사랑하셔서 이곳에 불러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너무나 감사하고 감격스러워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하나님 언어도 다르고 모습도 다르지만 담대하게 이들 앞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전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며 이들 앞에 섰다. 한국에서 우리 팀이 모일 때마다 소극적이던 중1 민준이 유리, 5학년 예슬이 예은이, 오랜세월에 굳어진 몸을 가지신 황선관장로님, 권혁자권사님, 주일학교 이후 거의 율동이라고는 해보지 않던 집사님들이었지만 우리 모두가 하나가되어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율동으로 하나님을 높여드렸다. 이 모습을 보며 낯선 사람들의 알아듣지 못한 찬양에 이곳 아이들도 조금씩 몸을 움직여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뒤이어 2부순서 네일아트, 풍선아트, 안경만들기를 하면서 아이들의 얼굴에 가득한 미소를 보며 우리팀 모두 행복으로 기쁨으로 가득참을 느꼈다. 다음날 뜨람끄나 교회에서 2시간동안 드렸던 주일예배, 청년들과 원을 만들어 하나님 앞에 춤추며 찬양했던 시간들, 한남교회 성도들의 헌금으로 지어진 예쁜 끄랑톰교회에서 350명 가량의 아이들과 드렸던 예배, 2층 다락방 같은 곳에서 15명 가량의 어른들과 반주없이 ‘사랑의 주님이’를 부르며 서로를 축복했던 시간들 모두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잊지 못할 시간들이었다. 이 3일간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날 때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심과 같이 캄보디아의 뜨거운 태양을 구름기둥으로 뜨겁지 않고 정말 좋은 날씨 가운데 사역할 수 있게 해 주신 것 감사드리며 우리 안에 넘치는 사랑과 기쁨을 주셔서 그 사랑, 그 기쁨을 이들에게 나눠주고 전해줄 수 있게해 주신 것 또한 감사드리며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해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두고 그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서시는 그 아버지의 사랑하심과 긍휼하신 마음을 깨닫고 알게 하여 주신 것에 감사드렸다. 이 감사한 마음을 품고 4일째 되는 날부터 캄보디아 문화탐방에 나섰다. 프놈펜 시내에 들어서자 거리 곳곳에 일곱뱀의 형상을 한 동상들, 곳곳에 승려를 양성하는 학교, 각 마을마다 세워져있는 큰절, 각 가정에는 조상모시는 탑, 이 나라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힌두사원인 앙코르왓트, 이 나라 전체가 그야말로 우상으로 가득 차 있었고 킬링필드로 인한 고통과 아픔의 역사가 이들 가슴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음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앙코르왓트가 있는 시엠립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따프놈산에 올랐다. 그런데 이곳에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그 거대한 앙코르왓트사원이 밀림에 가려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이 광경을 보면서 이 땅 가운데 가득한 우상이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것과 오랜 역사 가운데 스며들어있는 이들의 상처가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치유 받고 위로함 받을 수있을 것임을 소망하며 믿었다. 하나님은 나나님의 영광을 다른 자에게 하나님의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시는 분이시기에 이 땅의 유남숙선교사님과 이 땅 가운데 보내심을 받은 여러 선교사님을 통해 흑암 중에 앉아있는 이들을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구원 받게 하셔서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 삼으실 것을 믿는다. 또한 쁘로핵, 뜨람끄나, 끄랑톰에 모여 하나님을 찾고 예배하며 믿음으로 나아오는 이들이 자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그 가정을 변화시키고, 각 마을의 우상을, 이 나라의 가득한 우상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바라보며 나아가게 하셔서 가난하고 힘겨운 이 나라가 하나님께 은혜받고 축복받는 귀한 나라로 삼아주실 것을 믿는다. 이 단기선교를 통해 캄보디아 땅을 향한 믿음과 소망을 품게하여 주시고 모든 사역가운데 함께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목사님과 함께한 17명의 우리 팀원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 캄보디아를 다녀와서(권혁자)

먼저 캄보디아를 은혜 가운데 다녀오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여름엔 포기하려고 했던 단기선교를 갈 수 있도록 다시 한번 믿음으로 결단하게 하셨고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내 마음을 주장하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캄보디아에 가서 그 땅과 사람들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사랑하시는 땅과 백성임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유남숙선교사님의 사역을 보고 함께 어린이 사역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어린이들을 캄보디아의 복음화를 위하여 세우시고 자라게 하심을 느꼈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선교사님을 통하여 행하신 일들을 보게 하시고 어린이들이 그 땅에 소망인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또 현지 청년들을 영적인 지도자로 훈련하셔서 열정적으로 헌신하는 모습을 보며 큰 감동을 받았고 도전이 되었습니다. 세 교회의 어린이 사역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많은 어린이들을 모이게 하셨고 순수하고 맑은 어린이들이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말씀을 듣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렸습니다.  비록 우리의 준비가 부족하였지만 우리가 준비한 것들을 얼마나 기뻐하며 즐거워하는지 가슴이 뭉클하였고 좀 더 많은 것들을 준비하지 못한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마을에 가서 전도할 때에 주민들의 태도가 따뜻하였고 친절하였으며 우호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우리가 뿌린 복음의 씨앗이 언젠가 많은 열매 맺기를 기대합니다.  프놈펜의 박물관에 가서 크메르 루즈의 민족 대학살 장면을 보고 인간의 사상과 이념으로 얼마나 많은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었는지 정말 끔찍하였고 가슴 아픈 상처가 캄보디아 백성들에게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보혈로 그 땅과 백성들의 상처를 치유하시고 회복케 하실 수 있음을 믿고 마음으로 기도하며 돌아보았습니다. 비슷한 아픔을 가진 우리민족이 그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복음을 전해야할 사명이 있음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세계유산 중의 하나인 앙코르왓트 사원 문화 탐방을 하면서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에 도전했던 바벨탑이 생각났습니다. 한사원에는 나무 뿌리가 사원을 감싸서 무너져가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심판이 우상숭배하는 그들에게 임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앙코르왓트에서 캄보디아에 흐르고 있는 영적인 흐름이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끊어지고 성령의 능력으로 우상의 권세가 무너져 복음으로 새롭게 회복될 그날을 바라보며 기도합니다.
이번 단기선교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은혜 베풀어주셔서 모든 팀원이 하나되게 하셨고 선교사님 사역에 힘과 위로가 되었음을 감사드립니다. 계속적인 기도와 후원이 필요한 곳임을 알고 힘써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하나님나라 확장에 동력자로 설 수 있도록 다짐해봅니다.


*** 캄보디아 단기선교를 다녀와서(황복성)

저를 포함한 18명의 ‘I love cambodia' 팀은 지난 7월 30일부터 8월 6일까지 일주일간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가운데 모든 일정을 무사히 잘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직도 눈을 감으면 우리가 함께 했던 캄보디아 어린아이들의 천사같이 맑고 깨끗했던 눈망울이 아른거립니다. 정말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제가 캄보디아로 단기선교를 가겠다고 다짐하게 된 동기는 저의 영적 감급함이나 캄보디아땅을 향한 긍휼의 마음들이 아니었습니다. 제 마음을 움직이게 한 것은 단지 캄보디아의 유적지 ’앙코르왓트‘에 대한 기대감 뿐이었습니다. 이렇듯 뚜렷한 목표가 없었던 저의 단기선교는 처음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가족 중심으로 팀이 구성되다보니 장년과 아이들로 팀원들이 꾸려지면서 저 혼자 청년으로서 해야 할 일들이 있다고 생각하니 첫날 비행기를 타고 캄보디아로 이동하면서부터 제 마음이 어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단기선교를 준비하면서 기도제목으로 “팀 안에서 팀을 그리고 팀원들을 겸손한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섬기자”를 나눴지만 그렇게 첫날부터 제 마음가운데 기쁨과 감사보다는 두려움과 걱정들이 앞섰습니다. 꼬박 하루동안의 이동시간을 거쳐 우리팀 은 캄보디아 땅에 도착했고 이튼 날부터 시골 교회를 방문하는 것으로 사역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역지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내 마음속에 기쁨과 감사함이 없는데 내가 어떻게 이 사역들을 해나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들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버스로 약 1시간정도 이동해 우리 팀은 첫 사역지인 ’쁘로핵교회‘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버스가 교회 앞에 멈춰서고 버스에서 내리기 위해 창밖으로 눈길을 향하는 순간 저는 놀라움을 감출수가 없었습니다. 제 눈앞에 펼쳐진 광경 속 교회 앞마다에는 우리 팀이 온다는 소식을 들은 동네 200여명의 아이들의 저희가 도착하기 전 1시간 전부터 빼곡이 앉아있었습니다. 우리가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아이들은 우리를 향해 정말 때 묻지 않은 맑은 미소로 우리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그 순간 제 마음을 그렇게 순식간에 바꾸는데에는 그저 아이들의 미소면 충분했습니다. 그렇게 새롭게 마음을 추스르고 우리 팀의 사역은 시작되었습니다. 한국에서 매주일 연습하며 준비했던 율동을 아이들과 함께하며 뛰고 춤췄고 풍선아트를 함께하고 선물을 나누며 우리의 마음을 아이들에게 나누었습니다. 비록 우리가 그들의 언어를 하지 못했지만 우리의 마음을 전하는데 언어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짓고 포옹하는 것만으로 우리의 사랑을 그들에게 전할 수 있었고 그 아이들이 우리를 환영하고 사랑한다는 마음 역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제 마음한구석을 찡하게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캄보디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 세계 5대 빈민국가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되었는데 정말 그곳의 아이들 중에 신발을 신지 못하고 맨발로 다니는 아이들, 옷이 없어 벌거벗고 다니는 꼬마, 식수가 귀해 빗물을 모아둔 이물질 가득한 항아리의 물을 떠먹는 아이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제 마음이 아파오기 시작하며 한국에서 너무나 풍요롭게 살아온 저의 모습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저는 하나님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저를 너무나도 사랑하시죠? 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사랑하시죠? 그런데 왜 저는 이렇게 풍요롭게 살아왔는데... 캄보디아 이 땅의 아이들은 왜 이렇게 버려두세요” 라며 따지듯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그렇게 하염없이 아이들이 바라보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제 마음속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눈에는 이 아이들이 불행해 보이니? 하지만 이 아이들의 눈을 잘 보아라 이들 가운데 누가 불행해 보이니?” 그리고 아이들을 바라보니 정말이지 모두가 미소를 머금고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 아이들이 옷을 입지 못하고, 신발을 신지 못해서 불행하지 않단다. 단지 조금 불편할 뿐이다. 이들 역시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고 아끼는 나의 자녀들이다. 이들은 이 아름다운 자연 속에 나와 함께 하며 조금은 불편하지만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순간 공평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에 다시 한번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우리 팀은 시골지역에서 3일 동안 그들과 함께하며 교제하고 또 그들 교회 가운데 우리의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을 보수하며 그들을 섬겼습니다. 마지막 이틀의 시간은 수도 프놈펜과 앙코르왓트 땅 밟기를 하며 그 땅을 붙잡고 있는 우상숭배와 미신에 영적전쟁도 했습니다.  1주일 동안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캄보디아에서 그 땅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고, 또 제 삶 가운데 제 삶의 나아갈 길들에 대해서 계속해서 동일하게 말씀해주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캄보디아 팀사역을 마치면서 늘 함께 해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또한 아무런 어려움 없이 한 팀으로 늘 서로를 배려하고 아껴준... 그래서 이제는 가족처럼 느껴지는 우리 캄보디아팀...  모두 모두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 캄보디아 단기선교 간증문(이형준)

단기선교 광고를 보는 순간 올해는 여름휴가를 단기선교로 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배 후 집으로 오는 차에서 집사람도 올해 단기선교에 가보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들어 학생위주로 계획된 필리핀팀에 가족이 가는 것으로 신청을 했다. 한번도 경험이 없는 관계로 시간이 되면 출발해 갔다오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매주일 오후예배 이후에 선교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과 선교사 초청 강연회, 율동연습, 풍선아트, 기도회 등, 2시간가량 준비하는 시간이 육체적으로 많이 어려웠다. 내가 가진 것을 쉽게 전하면 될 것이라 생각한 나의 안일한 생각이 처음에는 나를 많이 힘들게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지속적인 준비 속에서 조금씩 구체적인 모습을 보면서 사전준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나의 계획과는 달리 필리핀팀의 일정이 초기 일정으로는 도저히 비행기표를 구할 수 없게 되어 부득이 올해는 단기선교를 포기해야겠다 생각하고 필리핀을 포기했으나 하나님께서는 필리핀이 아닌 캄보디아로 갈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셨다.  캄보디아팀에 늦게 합류한 관계로 우리 가족은 많은 것이 부족했다. 이를 만회하기위해 나름 많은 노력을 했다. 혼자서 풍선아트 동영상을 보면서 머릿속으로 이미지트레이닝을 통해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개인기도시간을 통해 캄보디아의 영혼들을 위해 내가 만나야 될 사람들을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했다.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있게 해달라고. 갑작스런 신집사님의 육체적 어려움으로 인해 갑자기 팀장으로 섬겨달라는 목사님의 요청을 받고 드러나면 교만해지기 쉬운 나 자신을 잘 알기에 어찌할까 기도하다 순종이 필요함을 느끼고 팀장임무를 수락하게 되었다. 그러나 직책만 팀장이지 팀에 도움이 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데 팀원 전체가 좀더 깊이 있게 하나가 될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캄보디아 출국날 김연수집사의 갑작스런 사고로 처음부터 사탄의 방해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면서 주님의 도우심을 요청하는 기도를 드렸다. 수속과정의 몇 가지 어려움이 있었으나 무사히 환승공항인 방콕에 도착 연결편을 기다리는 동안 김연수집사의 팔을 보니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급하게 공항 내 의무실을 찾아 정확하지 않은 영어로 치료를 요구하였으나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의 기도가 지속되어야함을 다시 느끼며 어렵게 방콕 병원으로 이동하여 검사 및 치료를 받았다. 이러한 과정 속에 치료과정과 시간계획이 문제가 생기지 않게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김연수집사는 본인의 고통을 팀원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으려고 많이 참고 참아 끝까지 팀에 도움이 되려고 노력했다. 감사한 일이다. 첫 사역지 도착과 함께 어린아이들의 티없이 맑은 눈망울을 보면서 어릴 적 나의 모습이 생각났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단지 교회에 가면 재미있고 가끔 먹을 것도 생기니 열심히 교회에 다녔던 내가 이제는 다른 이들에게 하나님을 전하고 있으니 이 애들도 언젠가는 하나님을 열심히 전할 것이라 생각하며 감사히 아이들 앞에서 율동으로 내속의 하나님을 향한 즐거움을 표현하였다. 아쉬움이 남는 것은 아이들과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쉬운 동작도 따라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도 우리와 함께 어울릴려고하는 모습 속에서 감사했다. 팀원들 모두 특히 황장로님 권권사님께서 누구보다 열심히 율동으로 아이들과 하나 되려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도전을 받았다. 처음 그곳 사람들을 보았을 때는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명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함이 나에게 어려움과 고통을 안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게 되었다. 그들의 모습 속에서는 불행하다는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나의 기준으로 불쌍한 것이지 그들은 전혀 불쌍하지 않았다. 그들의 얼굴에는 언제나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들이 나보다 더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그들의 모습이 아닌 그들 속에 하나님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노방전도시간에 전혀 의사소통은 되지 않지만 만나는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해 달라고 기도하고 그들에게 “예수믿으세요”{벙쯔어 쁘레아 예수}를 이야기하며 인사를 했다. 한국사람들보다 훨씬 호의적으로 대해 준 그들의 친절에 감사한다. 같이 동행한 4명의 아이들이 잘 적응하지 못하면 어찌하나 하는 걱정이 많았는데 처음부터 여자애들을 정말 행복하게 그들과 하나가 되었다. 어른의 걱정으로 잠시나라 그들의 준비과정을 의심한 것이 미안했다. 그러나 첫날 동참하지 못한 민준이로 인해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 그러나 같이 동참하는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모두의 마음에 즐거움을 선사하였다. 참 감사하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서로 잘모르는 이들로 구성된 팀이었으나 이번 기간을 통해 서로를 깊이 알게 되었으며 모두 어렵고 힘든 환경 속에서도 팀을 위해 서로 노력하는 모습 속에서 하나님과 아름다운 동행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식사, 잠자리, 교통편, 사역 등 모든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으나 모두 자신에게 맡겨진 부분에 최선을 다해 임하였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려는 모습 속에서 예수님의 사랑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행복은 환경이나 여건이 아니라 어떠한 마음으로 임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팀원들 모두가 이번을 계기로 지속적으로 하나님사역을 함께 할수있게 하기를 간증하는 것이 모두에게 행복의 마음을 주었으며 그곳에서 자신을 인생을 하나님을 위해 드리는 선교사님의 헌신이 캄보디아의 복음화가 이루어지는 밀알이 될 것을 느끼며 하나님의 사랑이 선교사님과 함께하길 기도한다.


*** 2010년도 캄보디아 단기선교 간증문(김민성)

캄보디아 단기선교를 부모님께서 가보지 않겠냐고 권유하셔서 캄보디아가 어디있는지 어떤 곳인지도 알지 못하고 생각없이 한번 가보겠다고 말씀드려 가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캄보디아를 가기로 결정하니까 입시가 얼마 안 남은 상황에서 거의 10일동안 피아노를 안치고 손이 굳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학원을 빠지고 가는 것도 걱정이 되었고 본 교회 대민교회 수련회도 겹치고 학원에서 대학교 입시 캠프를 추천받고 여러 가지 캠프가 여러 군데 다녀올 수 있게 짧게 짧게 연결되었고 물질적으로도 가는 여건이 많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도 대학을 들어가고 군대를 다녀오면 캄보디아라는 곳을 가기가 어려울 것 같고 아버지랑 함께 해외를 같이 나가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아서 결정을 했고 단기선교를 고1때 대민교회에서 필리핀으로 한번 갔을 때 아쉬움이 남았는데 필리핀으로 갈지 캄보디아로 가는 것을 놓고 필리핀은 그래도 한번 가보았다고 캄보디아로 마음이 갔고 사람도 부족하다고해서 캄보디아로 가게된 것이 그냥 결정된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갈 때부터 아침 일찍 출발하는 것 때문에 그 전날 미리 석포교회에서 1박을 하고 새벽기도를 드렸다. 기도를 드리니 캄보디아로 가는 마음이 굳어졌고 다른 생각은 나지 않고 사역을 열심히 하기로 했다.  비행기로도 태국 방콕을 거쳐서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오랜 기다림으로 도착을 했다.  별로 한 것도 없이 계속 지치고 피곤했지만 하나님께서 단비를 내리셔서 조금이나마 덥지 않고 지치지 않게 하셨고 단잠으로 피곤하지 않게 하시고 힘을 주시고 굶주리지 않도록 입맛도 너무 맛있게 먹을 수있도록 맞추어 주셨고 배불리 먹을 수 있게 해주셨다. 사역을 하고나서 캄보디아 문화 탐방을 할 때 이 캄보디아 땅에도 프랑스의 식민지로 있다가 독립하고 내전으로 인한 대량학살의 아픔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로 인해서 서로서로 국민들이 믿지 못하고 이웃 간의 불신이 사라지지 않고 곳곳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숭배를 하고 사원에 돌탑들이 쌓이고 사람이 만든 것에 불가사의해하고 신격화하는 것에 마음이 아팠다. 사역하는 시간과 캄보디아에 머물렀던 시간들이 너무나도 짧고 얼마되지 않게 느껴졌고 제대로 잘 하지못한 것같아 더 아쉬움이 많이 남았고 이번 캄보디아 단기선교가 일생에 잊혀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다시 제대로 준비해서 꼭 캄보디아로 한 번 더 선교하러 나가고 싶다.


*** 캄보디아 단기선교를 와서(강해영)

캄보디아 단기선교를 가기로 결정한 뒤 예기치 못한 문제가 터지면서 과연 단기선교를 갈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든때가 여러 번이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무사히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캄보디아 땅에 도착했을 때의 느낌은 많이 낙후된 지역이구나. 예전 제가 어렸을 때 살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서 생경스럽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70년대에서 멈춘 것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도착하고보니 캄보디아가 세계 5대 빈국에 속한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열악한 곳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팀이 사역한 곳은 프놈펜에서 1시간가량 떨어진 따께오주의 한곳이었는데 유남숙선교사님이 세 곳의 교회를 개척하여 어린이 사역위주로 사역하고 계신 곳이었습니다. 첫 번째 사역한 쁘로핵교회에 도착했을 때 저는 마음이 무척 아프고 아이들을 바라보기가 힘들었습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300명가량의 아이들은 너무나 헐벗고 더러웠으며 그 모습은 몹시도 애처로웠습니다. 그러나 그런 감정은 잠시뿐 어린아이들의 눈동자를 보면 너무도 예쁘고 사랑스러웠으며 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전할까?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같이 찬양하며 선물을 나누며 힘든 시간들이었지만 그 시간 가운데 제가 깨달은 것은 하나님께서 이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이 아이들을 보고 얼마나 기뻐하시는지였습니다. 그러면서 100여년 전 우리를 보고 가슴아파하며 복음을 전했던 선교사의 심정이 지금 우리의 심정이고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빚 진자의 심정으로 아이들을 대할 수 있었고 그 후로는 아이들의 헐벗음이 슬프기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아이들에게 복음이 전해지고 그것이 열매 맺으면 이들도 우리처럼 세월이 흐른 뒤 복음을 들고 세계를 누비는 삶을 살게되는 것을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축복을 이 캄보디아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부어주실 것을 믿으며 말입니다. 처음엔 아이들의 헐벗은 모습에 슬펐다면 그 아이들에게 복음이 뿌려지고 있음에 소망을 발견하고 그것 때문에 기뻤으며 그것이 저에게 은혜가 되었습니다. 그저 불쌍한 아이들 잠시 가서 선물주고 위로하고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음이 들어가서 그곳의 아이들의 삶이 변하고 소망이 생길 것을 바라보게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아이들의 모습이 괜찮지는 않았습니다. 머리는 언제 감았는지 떡져서 이투성이였으며 손톱은 언제 깎았는지 모를 정도로 길고 더러웠고 옷은 빨지 않아 본래의 색깔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더러웠고 그나마 그것이라도 입고 있는 아이는 다행이었습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알몸으로 교회에온 아이들을 보면 속옷이라도 준비해올걸... 신이 없어 맨발인 아이들을 보면 슬리퍼라도 준비해올걸... 엉킨 머리를 보면 빗이라도 가져왔다면 빗겨줄걸... 등등의 현지사정을 몰라 준비해오지 못한 것이 너무 미안했고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님을 하나님께서 또 가르쳐주셨습니다. 그곳에는 필요한 것이 수도 없이 많지만 그 무엇보다도 말씀이 필요하고 말씀을 전할 사람들이 필요함을 말입니다. 이것은 비단 캄보디아 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사역하고 계시는 선교사님들에게 다 해당될 것 같습니다. 혼자 몸으로 캄보디아 따께오까지 오셔서 세 개의 교회를 개척하시고 홀로 감당해나가는 유남숙선교사님을 보면서 같이 일할 동역자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리고 선교지를 향한 끊임없는 기도와 후원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귀로만 들었는데 이제는 눈으로 보게되니 더욱더 선명해지고 확고해졌습니다. 여기에 있는 우리가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하는 이유와 후원해야하는 이유 또 단기선교로 가야하는 이유가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느껴지지 않고 내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식어지고 지금 삶의 모습에 만족함이 없는 분이 있다면 감히 말씀드립니다. 단기선교 꼭 다녀오세요.  은혜의 강물에 빠지게 될 것이며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을 알게될 것입니다. 그래서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기도하게 되고 선교의 동원가가 되어있는 자신을 바라보게 될것입니다. 우리팀은 세 개의 교회에서 어린이 사역을 했는데 예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도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 잘 감당하게 하셨고 그 일에 대해 아무도 불평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들을 보며 서로가 은혜 받았습니다. 어린이 사역에 찬양과 율동담당이 김영선 자매였는데 갑자기 두 팀으로 나누어야하는 상황이 생겨 당황했지만 우리 팀의 이미영집사가 잘 준비되어져 아무 문제 없이 두 팀으로 나눠 사역할 수 있었고 뜨람끄나 교회 보수공사할 때에도 고장난 스피커, 전기선 정리, 하수도 공사, 방충망 설치 등 갑자기 닥친 상황이었지만 마치 보수공사 팀을 미리 짜온 것처럼 모두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팀에서 즐겨쓰던 말이있었는데 “이때를 위함이라” 이 말은 모든 상황에 적용되어 우리 모두를 기쁘게 하였고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또한 알게 하였습니다. 단기선교를 떠나기 전 모든 분들이 우리팀을 걱정하셨습니다.  팀구성이 10대부터 60대까지 된대다 가족단위로 이루어져 사역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나 자신도 걱정이었지만 우리팀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가되어 기쁘고 즐겁게 사역하고 돌아왔음을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팀원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참 복음과 참 목자를 기다리고 있는 캄보디아 (황선관장로)

어서 빨리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캄보디아를 실제로 와서 보며 이렇게 넓고 평지로만 이루어진 국토, 산 하나 보이지 않는 넓은 땅, 무덥기는 하지만 맑고 아름다운 하늘과 푸르럼이 가득한 땅, 무엇 하나  나무랄 데 없는 이 나라인데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 초라해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사람들은 한 없이 좋아 보이고 착하고 온유해 보이는데 킬링필드와 같은 끔찍한 일들이 이 나라 안에서 있었다니 믿기지 않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집집마다 모셔두고 있는 조상신을 모신 분향단들을 보면서 이 무지에서 이들을 깨우쳐 줄 누군가가 필요한 것을 절감해 본다. 어린이 사역때에 모여든 그 수 많은 어린이들, 쉽게 춤추고 뛰놀 줄도 모르고, 감정을 발산 할 줄도 잘 모르는 아이들 이었지만, 많은 아이들이 맨발로 다녔고, 거의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녀들에 대해 무관심한 상태라고 하였지만 그래서 우리 하나님은 이들을 얼마나 더욱 안타까워하시며 누군가가 이들을 깨우쳐 줄 수 있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땅과 사람들 그들이 이 바로 이 캄보디아 사람들임을 쉽게 알수 있었다. 목자없는 어린양 같은 모습이 바로 그들의 모습이었다. 곡식은 희어져 추수할 때가 다 되었는데 추수할 일꾼이 부족하니 추수할 일꾼을 보내어 달라고 기도해야 할 그곳이 바로 이곳 캄보디아였다.
이런 캄보디아땅에 300여명의 한국인 선교사님들이 나아와 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기는 한데도 아직도 태부족으로 일꾼이 부족한 캄보디아땅이었다.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는 주님앞에 섰던 이사야의 고백처럼 내가 여기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는 이사야처럼 많은 사람들이 어서 그 땅으로 추수하러 와야만 될 땅이 캄보디아였다. 여러번 단기선교를 다녀 보았지만 어느 곳이던 추수할 일꾼들이 필요한 것을 매번 절감할 수 밖에 없었다. 앙코르왓트같은 그 엄청난 유적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그들의 조상들이었는데, 그들이 제대로 알지 못하여 헛된 우상을 섬겼던 그 조상들. 그들의 유전이 아직도 이 땅과 이 백성들을 흑암중에 해메이고 있게 하고 있지않은가. 우리도 똑 같은 선진들로서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이 참믿음을 잘 전수해 나가는 참 믿음의 선진이 되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지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묻고 있었다. 과연 당신들은 이 곳에 와서 우리들을 도울자들이 맞습니까 ? 하고 . 아무도 잘 신뢰 할 수가 없는 이들. 외형적으로는 적의가 없음을 보여주고 있기는 해도, 온유해 보이기는 해도 그 마음 깊은 곳에는 사람들을 그 누구도 잘 신뢰할 수 없는 아픔들과 그 무거운 짐들을  가슴가득 안고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마음을 보여주는 듯 했다. 와서 우리를 도와주세요 우리가 이렇게 애타게 기다리고 있잖아요. 그 소리 없는 부르짖음이 아우성처럼 들리는 캄보디아 땅, 참 구원을 베푸시는 알지 못하는 하나님을 찾아 나서고 있는 캄보디아 백성들 이었다. 이런 곳에 2003년 유남숙선교사님을 부르셨고 그 선교사님을 도와 그리스도의 복음과 사랑을 전하고 있는 현지에서 세워져 자라가고 있는 그 땅의 제자들. 그 들과 그 땅과 그 땅의 사람들을 와서 보라고 그 들을 도우라고 우리를 이 곳에 부르셨던 것입니다. 캄보디아땅과 그 땅 백성들을 사랑하시며 참아 기다리시며 오늘도 추수할 일꾼을 기다리고 계시는 우리 하나님께서.


*** 단기선교 후기 (김재익목사)

처음 단기선교팀을 모집할 때부터 쉽지 않았다. 한 분 한 분을 만나면서 어느 누구 하나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편찮은 부모님, 경제적인 문제, 직장업무 등. 또 기간이 최성수기라 항공료가 평소보다 높게 책정되어서 더욱 기도를 늦출 수가 없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모지된 인원 중에 중도에 빠지는 분이 생기고 항공권 발권을 마친 이후에도 취소하고 다시 발권해야 하는 문제들이 발생했다.
또 팀을 인도해야 할 제가 주일성장반과 같은 시간 단기선교학교가 열려 팀원들이 하나되지 못하고 몇주가 지난 후에야 사역모임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더 기도를 늦출수가 없었다.
마음을 낙심케 하는 사단의 역사가 강할수록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클 것이라 믿음으로 고백하며 기도했다. 부족한 부분도 많았지만, 결과는 최고였다.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은혜를 체험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우리 팀에는 대다수가 아무도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지만, 자신의 삶의 정황들을 모두 내려놓고 주의 부르심에 나아갔기 때문이다. 우리 팀의 한 분 한 분을 생각하면 할수록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이 더욱 확신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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